2020년 9월 주보칼럼 - 사랑의 거리두기

사랑의 거리두기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불안과 무기력이 팽배하고 우울함과 스트레스가 급증하는 추세이다. ‘코로나19 국민위험 인식조사’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의 어감은 별로 좋지 않다. ‘공감’, ‘관계’, ‘하나 됨’ 등의 말과 달리 용어 자체에 ‘거리’라는 소외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가까이하지 말라는 ‘친밀감’이 배제된 용어로 소외된 사람을 더 소외되어 고립시키는 의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 부른다. ‘간’(間)은 ‘사이’, ‘관계’라는 의미로 ‘관계적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복은 관계에 의해 결정되기에 관계가 좋으면 삶의 만족감이 높아지고 행복해진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인간의 근본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심지어는 모든 ‘타인’을 잠재적인 감염자로 바라보게 하는 시선으로 만들어 버렸다.


  누구든지 감염될 수 있기에 타인은 거리를 두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엘리베이터에  타기만 해도 마스크를 했는가 살피고, 누군가 기침을 하면 가슴부터 내려앉는다. 그것은 백신이 없는 코로나19예방의 대안이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타인을 지옥으로 여긴 일이 생겨났다. 2월 3일,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손 흥민 선수가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 후에 인터뷰하며 기침한 것이 SNS에 ‘코로나19전파’라는 댓글로 번졌다. 그리고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취급을 당하는 인종차별을 당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타인을 배척하고 선을 긋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서로를 존중하며 더 좋은 관계를 맺는 ‘배려’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사회적 배려하기’, 또는 ‘사랑의 거리두기’로 바꾸어 표현해야 한다. 동물은 병에 걸리면, 서로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의 안드레아 타운센드 교수 연구진은 8월 12일 국제 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에 동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관찰한 연구 논문에 “동물들은 병에 걸린 동료의 행동이나 분비물의 이상 징후를 감지하면, 감염을 줄이기 위해서 피하고 돌보는 행동을 한다.”고 발표했다.


  바닷가재의 일종인 카리브해 ‘닭새우’는 산호초 틈에서 무리를 지어 살며 동료가 병에 걸리면 둥지를 나와서 도망간다고 한다. 이것은 어린 새끼들까지 죽게 만드는 위험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흰개미들은 독성 곰팡이에 감염되면, 자신의 몸을 떨어 신호를 보내 동료가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꿀벌 애벌레’는 박테리아에 감염되면,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꿀벌들이 감염된 애벌레를 물어다가 벌집 밖으로 버린다고 한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인간의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인간의 결합이다. 그리고 사랑만이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불안을 제거하는 유일한 처방은 사랑의 결합이다. 사회적 거리를 두되 사랑의 배려하기를 하자!

                                                                  - 목회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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